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비우스 다리 전투 (문단 편집) == 소개 == 영어 : Battle of the Milvian Bridge [[파일:external/thekingdomiswithinyou.com/constantines-vision.jpg]] [[사두정치]] 체제의 내재적인 모순으로 황제 간의 협동이 안 되자 그걸 다시 정리하기 위해 벌어진 [[로마 내전]] 중의 전투였다. 로마 제국의 공동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2년]] [[10월 28일]] 경쟁자인 [[막센티우스]]와 로마 시 근교[* 로마 시 북쪽에 있고, 다리 밑의 강은 다름 아닌 테베레 강이다.]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했고, 막센티우스가 여기서 죽게 되어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서방을 통일했다. 막센티우스는 기병 전력에서 앞선 콘스탄티누스군의 기병이 우회 돌격해오는 것을 막고, 콘스탄티누스군 보병대가 축차 투입될 수밖에 없는 좁은 다리라는 병목지점을 보병 전투력에서는 로마군 최강이었던 [[프라이토리아니]] 전력으로 방어하려고 했으나, 콘스탄티누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직접 기병대의 선두에 서서 다리로 정면 돌격하여 막센티우스군의 방어선을 정면에서 분쇄하고, 혼란에 빠진 막센티우스군은 좁은 다리로 몰렸다가 [[배수진]]처럼 몰살당했다. 막센티우스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는데,[* 따지자면 퇴각하다가 강물에 빠져 익사했는데, 그런 강물과 다리 자체가 전장이었으므로 사고사라기보다는 전사로 보는 것이 더 맞다. 바다나 강에서 선박끼리 해전을 치르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을 사고사가 아니라 전사로 보는 것과 같다.] 공교롭게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가족은 불쌍한 것이 부([[막시미아누스]], 처형), 자([[막센티우스]],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전사), 녀(파우스타, 후계 구도와 궁정 음모로 처형)가 '''전부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죽임을 당했다.'''(...) 여기에 막센티우스는 죽은 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승리를 기리는 로마 입성 행진에서 시신이 창에 꿰였고, 경고의 의미로 북아프리카로 보내지는 등 험한 꼴을 당했다. 로마 근위대, 즉 [[프라이토리아니]]가 [[회광반조|마지막 불꽃]]을 산화한 전투이기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막센티우스가 전사하고, 다른 아군들이 전부 도주하는 상황에서도 프라이토리아니는 위치를 사수하며 최후까지 저항했다고 한다. 전투력의 쇠퇴와는 무관하게 마지막까지 근위대라는 자부심은 있었던 것이다. 《비잔티움 연대기》에 의하면, 퇴각 중에 공병 대원들이 다리의 너트와 볼트를 뽑는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큰 추락사고가 났고, 거기에 황제 막센티우스도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